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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유연] 사무실데이트

달달하게 백기와 사무실에서, 또 하늘위에서






깜빡깜박- 전구를 갈 때가 되었는지 사무실 안의 불빛이 어두워졌다 밝아졌다를 반복했다. 책상에 오래 엎드려 있어서인지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기지개를 한번 쭉 핀 유연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슴푸레 한 새벽을 막 지나가고 있는 시간대, 이때까지 잘 생각은 아니었는데.. 유연은 사무실 안을 돌며 자신의 실책을 반성했다. 뜻대로 되지 않은 일정에 생각이 복잡하게 얽힌 유연은 얼른 눈을 돌려 자신이 잠으로 날려버린 시간을 민회할 만한 시간이 남았는지 확인했다.


"보자, 5시라… 빨리 하면 되려나"


사무실 한켠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던 유연은 5시를  가리키고 있는 시침이 불만인듯 쏘아보며 종종걸음으로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물론 일이 밀린 것은 아니었으나, 이런것들을 제가 해두지 않으면 제 부하 직원만 고생할 것이 뻔했기에 유연은 차마 일을 놓을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 놔두고 혼자 휴가도 가는 마당에 일도 미뤄두고 가기엔 유연의 마음이 편치 않기도 했거니와 이 사실을 안 백기가 아침에 데리러 오기로 해버렸으니 애초에 자리를 떠날 수가 없기도 했던 까닭이었다. 아무튼 기합을 넣고 이러저리 어질러진 서류 덩어리를 정리하던 유연은 자신의 서명이 필요한 부분이나, 진행할 프로그램 이해에 필요할 만한 부가설명을 간단히 적어넣으며 서류정리를 이어나갔다. 꽤나 집중한 탓인지 사각거리는 펜소리만 가득하던 사무실에 작게 바람이 일렁이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유연은 마지막 남은 서류에 눈을떼지 못하고 이것저것을 적어넣고 있을 때였다.


"안 추워?"


갑작스레 귓가에 울리는 중저음의 음성에 유연은 몸을 굳히곤 뒤를 돌아봤다. 밝은 갈색의 머리카락, 언제나와 같이 부드러운 무표정을 짓고있는 백기가 제 뒤에 서있었다.


"선배! 왜이렇게 일찍 왔어요?"

"그냥.. 일이 빨리 끝나서. 날이 쌀쌀해, 그렇게 입으면 추울텐데"


백기는 잠시 기다리리는 듯이 고갯짓을 하곤, 저가 입고있던 베이지색 가디건을 자신의 어깨에 걸쳐주었다. 가을을 맞아 조금 차갑게 식어있던 주변의 온도가 백기의 온기에 사르르 녹아 풀리는 것만 같았다. 백기의 따뜻한 온도에 술렁이는 마음을 가다듬은 유연은 백기에게 재빨리 감사를 전했다.


"고마워요, 선배. 많이 기다렸어요? 저 이제 곧 끝나요"

"응, 기다릴게. 오래 걸려도 별로 상관없어"

"그래도 뭔가, 휴가인데 사무실에만 있기는 아깝잖아요. 금방 끝낼게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그래"


빠르게 서류를 완료하려 다시 펜을 든 자신의 주변을 서성이던 백기는 조용히 제 옆자리에 앉아 제가 하는 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조금 절차가 복잡한 마지막 서류를 처리하려 한장씩 넘길 때마다 황금빛을 띄는 동공이 자신을 졸졸 쫒아오는것이, 묘하게 가슴을 두드린다. 집중해야하는데- 백기의 시선때문인지 자꾸만 펜을 든 손이 버벅거렸고, 기분좋은 긴장감덕에 입가엔 자꾸만 웃음이 번졌다.


"선배? 많이 심심해요?"

"별로 심심하지 않은데. 그건 왜?"

"아뇨, 그게.. 선배가 계속 쳐다보니까 뭔가, 그- 심심한가 싶어서요"

"그냥. 이런모습도 새로워서, 보고싶어서 보고있었어"


부드럽게 번지는 부끄러움에 유연은 고개를 숙이곤 서류에 얼굴을 파묻었다. 빨리 서류를 끝나고 나가야하건만 온통 백기의 시선으로 물들어 쉽사리 서류에 눈길이 가지 않았다. 이게 다 백기선배 때문이야, 엄한곳에 원망을 돌리던 유연은 빨갛게 붉어진 얼굴을 조심스럽게 들고 서류의 마지막장을 하는둥 마는둥 끝내버리곤 서둘러 책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펜은 이쪽, 남은 서류는 저쪽에다, 차곡차곡 정리하기 시작한 유연의 모습에 백기도 가까이 다가와 자신의 품에 안긴 서류를 빼들고 서서는 유연, 자신을 빤히 바라보았다.


"이건 어디다 두면 돼?"

"아..그건 저기 앞쪽 자리에 두면 되요"

"음, 또 도와줄 건?"

"거의 다 했어요. 혼자 할 수 있는데.."

"둘이하면 더 빠르니까"

"고마워요, 선배"


유연의 고맙다는 말에 한번 뒤돌아서 씩 웃은 백기는 사무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분의 손길로 빠르게 정리된 사무실을 한번 돌아본 유연은  기지개를 쭉 펴며 시계를 한번 쳐다보았다. 오전 6시, 아직은 어둠이 완전히 가시지 않아 새벽녘의 파란 기운이 감돌고 있을 시간이었다. 점점 낮아지는 기온에 사무실에 온열기기를 언제 들여야 하나 고민하던 유연은 옅은 차가움에 팔을 쓰다듬다 문득 백기의 겉옷이 제게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선배! 이거 다시 입어요. 날이 찬데, 이러다 감기 걸려요"

"괜찮아. 너 추우면 입어"

"저는 괜찮은데.. 선배 감기 걸리기 전에 빨리 입어요"

"감기 걸리면 네가.. 간호,해주겠지"


귓가를 붉힌 채 창밖을 응시하며 말을 마친 백기는 괜히 자신의 뒤통수를 만지작거렸고, 유연은 그런 백기의 말에 마음이 간질거리는 것을 느끼며, 그를 바라보았다. 갈색 머리칼 밑으로 붉은 귀를 감추며 쭈뼛대는 백기가 너무나도 귀여워, 유연은 그만 참을수가 없어졌다.


"선배, 그럼 이리와요"


유연은 한쪽구석에 놓인 저렴한 쇼파에 앉아 자신의 옆자리를 손으로 톡톡 두드렸다. 그 제스쳐에 백기가 성큼 다가가 유연의 옆자리에 앉자 유연은 쇼파밑에 구비해놨던 커다란 담요를 꺼내 백기의 어깨에 두르고선 자신의 어깨에도 같이 둘렀다. 담요를 뒤집어쓴 꼴이 된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보며 소리없이 웃음을 참았다. 그러기를 몇분, 따스한 담요안에서 서로 붙어앉아 체온을 나누니 가을 새벽녘의 쌀쌀한 한기는 금방 사라지고 없었다. 천천히 백기의 넓직한 어깨에 머리를 기댄 유연은 부드럽고 편안한 정적 속에서 가지런히 놓인 백기의 손을 만지기 시작했다.


"와, 선배 손이 엄청 크네요"


손바닥을 맞대고 자신의 손과 같이 보자 적어도 한마디 이상이 차이가 났다. 또한 굳은 일을 해서인지 백기의 손은 마디가 굵고, 잘게 나있는 상처와 몇군데에는 굳은살도 박혀있었다. 그에비해 주된 일이 사무업인 자신의 손은 얇았고, 딱히 상처도 없이 멀끔했다. 두 손의 차이를 세세하게 살펴보던 유연은 백기가 갑자기 손깍지를 끼는 바람에 더 이상의 관찰을 하지 못했다.


"네손, 작고 부드러워. 그렇지만 강인해. 너와 닮았어"


백기는 깍지 낀 손을 남은 한 손으로 매만지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런 네 손으로 만든 모든 것들이 있어서 나는 행복해- 그렇게 말한 백기는 유연의 손을 조심스럽게 제 입술에 살짝 눌렀다. 부드럽고 따뜻한, 묘한 감촉이 유연의 손등에 잔상처럼 남았다. 너무나도 소중하다는 듯이 꽉 쥐면 부러질까, 그렇게 유연의 손등에 입을 맞춘 백기는 눈을 감고, 부끄러운듯 손을 움찔거리며 조용히 자신의 어깨에 기대있는 유연의 머리에 제머리를 기댔다. 너무나도 소중한 시간이었다. 둘뿐인 사무실에서 들리는 소리라고는 똑같이 고동치는 서로의 심장소리와 두 사람분의 숨결소리 뿐이었고, 느껴지는 온기 또한 서로의 것 뿐이었다. 마치 이 세상에 둘만 남은 것처럼, 일상적이지만 너무나도 소중한 시간들. 그 속에서 유연은 점차 떠오르는 새벽 아침빛을 맞이하며 자신이 잡고있는 한 남자의 온기를 꼭 붙잡았다. 누구도 방해할 수 없는, 오로지 둘만의 시간이었다.





*****





그렇게 시간은 금방 흘러 시계는 7시 좀 넘은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침햇살이 완연하게 비춰 사무실을 환하게 비추고 있는 와중에, 어슴푸레한 어둠이 막 가신 사무실엔 두 명의 인영이 포근한 아침햇살에 이제 막 눈을 뜨고 있었다. 서로에게 기대어 졸린 눈을 한번 깜빡인 유연은 화들짝 놀라며 사무실 벽면에 걸린 시계를 쳐다보았다. 7시 20분. 푹 잔것 같은데 생각보다 시간이 별로 흐르지 않아 유연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백기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백기또한 잠들었었는지 아직 잠기운이 섞인 황금빛 눈을 자신에게 맞추어왔다.


"둘다 잠들어버렸네요"

"그러게"

"오랜만에 깊게 잠들었더니 개운해졌네요. 아, 배고프다! 선배 아침 먹으러 가기전에 간단하게 코코아 어때요?"

"좋아. 네가 해주는거면 뭐든"

"금방 가져올게요!"


백기의 말이 끝나자마자 대답하고 급하게 자리를 비운 유연은 사무실의 안쪽으로 들어가 찬장에 숨겨놓은 코코아가루를 꺼내들었다. 코코아통을 붙잡은 유연은 홧홧하게 열이오른 얼굴에다 부채질을 하며 두근대는 심장을 가라앉혔다. 막 잠에 깬 얼굴로 그런 말이라니, 반칙이잖아.


"후- 어디보자 종이컵이.."


원래대로라면 작은 테이블에 놓여있을 종이컵이 보이지 않았다. 어제 다 쓴것일까, 이리저리 둘러보던 유연은 다시금 찬장을 열어 제일 높은곳에 있는 종이컵봉투를 꺼내려 까치발을 들고 일어섰다. 아슬아슬하게 닿지 않는 봉투에 살짝 뛰어보려는 찰나, 등으로 따뜻한 온기가 다가와 종이컵 뭉치를 대신 꺼내주었다.


"날 부르지 그랬어. 네가 하는 부탁이라면 내가 할수있는 한 뭐든 다 도와줄거야"

"닿을 것 같았는데.. 아무튼 고마워요, 선배"


뒤돌아 그의 얼굴을 쳐다보며 말을 잇자 백기는 은은하게 미소지으며 유연을 바라볼 뿐이었다. 이윽고 커다란 손이 유연의 머리카락을 살살 쓰담으며 조곤조곤 귓가에 속삭이듯 말을 이었다.


"그럼 얼른 코코아먹고, 나랑 같이 나가자. 대신 이번엔 내가 원하는 곳으로 가는거야, 알겠지?"


백기의 숨결이 닿은 귓가에 열기가 감돌았다. 부드럽게 웃은 백기는 서서히 뒤로 물러났고, 유연은 다시금 붉어진 얼굴로 따뜻한 코코아 두잔을 타는데에 열중했다. 이윽고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따뜻한 코코아 두 잔이 완성되었고, 유연과 백기는 볕이 들기 시작한 창가에 서서 노을빛이 들기 시작한 나뭇잎들을 바라보며 조용히 달콤한 코코아를 마셨다. 꼭 서로 함께하는 시간 마냥 달콤한 한잔의 휴식시간은 곧 끝이나고, 두 사람은 약속한대로 간단하게 짐을 챙겨 가을의 정취가 뭍어나는 밖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사무실을 나오자마자 코끝에 묻어나오는 낙엽의 향과 찬 기운이 둘을 감쌌다. 찬 기운을 헤치며 걷는 거리엔 이른 아침인 탓인지 몇몇의 사람들을 제외하곤 보이지 않았다. 타박타박 유연의 보폭에 맞춰 걷던 두 사람은 주위에 아무도 보이지 않게 되자, 하늘로 날아올랐다.


"유연아, 괜찮아?"

"으, 떨어져요. 선배!"

"불안하면 내 허리 꽉 잡고 있어. 그리고 안심해도 돼, 내가 너를 놓칠리가 없잖아"


찬바람이 부는 허공으로 점점 올라가는 두 사람의 그림자가 지면에서 사라지고, 이윽고 작은 점으로 보일 때까지 백기는 쉼없이 자신의 능력을 사용해 두 사람을 하늘로 올려보냈다. 유연이 다치지 않도록 조심조심 이볼을 컨트롤하던 백기는 이윽고 자신이 원하는 지점에 다다랐는지 속도를 천천히 늦추기 시작했다. 그러자 백기의 품속에 고개를 파뭍고 있던 유연도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주변을 바라보았다. 백기의 품에 안긴채 내려다본 경치는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어때?"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광경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발밑으로 구름이 넘실대고, 푸른 창공에는 새하얗게 바래 부서질만큼 푸른 창공이 펼쳐져 있었다. 발밑의 구름 더 아래엔 산들이 울긋불긋 낙엽으로 덮혀있고, 서서히 깨어나는 도시는 작은 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도심위로 떠 있는 해는 오렌지빛 맑은 햇살을 고루 공평하게 온 세상으로 퍼트렸다. 마치 수채화 그림 속으로 들어와 있는 것만 같은 풍경이 두 사람의 눈앞에 펼쳐졌다. 유연이 가느다랗게 탄성을 터뜨렸다. 순간적으로 자신이 높디높은 허공에 있는지도 잊은 채, 백기의 품에서 꿈틀대며 그 모든 광경을 눈에 담았다.


"너와 함에 보고싶은 풍경이었어. 어때? 아름답지"

"정말.. 정말로 아름다워요, 선배"


유연을 바라보며 맑개 개인 하늘처럼 웃은 백기의 황금색 눈동자에 비친 햇살 한 자락에 유연은 너무나도 가슴이 떨려와 그의 목에 팔을 둘렀다. 이 모든 풍경도 선배가 없었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었을거에요- 유연은 가만히 백기의 귓가에 속삭였다. 백기는 그런 유연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유연은, 자신이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앞으로 어떤 운명이 자신을 가로막더라도, 백기는 유연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준비가 이미 되어있었다. 그것이 설령 모든것을 위험하게 하더라도.


"나는… 언제까지나 너와 함께하고 싶어. 매일 같이 아침을 먹고, 같이 꿈을 꾸고, 같이 걷고싶어. 그리고 모든 계절을 지나 다시한번 가을이 됐을때, 같이 다시 이 풍경을 너와 함께 보고싶어"


바람소리에 묻힐 듯 말듯, 아스라히 들려오는 백기의 말소리에 유연은 미소지었다. 간절하게 저를 내려다보는 황금빛 눈동자를 가진 이 사람에게 유연은 확답을 줄 순 없었다. 자신의 운명이 어떻게 될 지는 자신도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대신에-


"꼭, 보러와요. 다시 이 하늘을"


말을 마친 유연은 지긋이 눈을 감고, 그를 기다렸다. 눈앞에 그림자가 지고, 부드러운 그의 입술이 닿았다. 색색으로 물든 대지위의 푸른 창공에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 의지하며 약속을 담은 입맞춤을 나눴다. 기쁨과 안타까움으로 흐른 눈물이 붉게물든 대지위로 천천히 떨어졌다. 작은 눈물방울에 모든 가을이 담겼고, 이내 낙엽에 닿아 찬란하게 부서졌다. 둘은 이 가을의 약속이 깨어지지 않길 소망하며, 그렇게 푸른 창공에서 하나의 낙엽이 되어 오랫동안 서로를 마주보았다. 이 풍경을 다시보길 기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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